얄리, 에라쥐리즈, 테라노블

[와인/시음기]
[2006년 4월 27일] 작성
[2006년 6월 13일] 수정/추가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와인 이름, 에티켓(레이블)은 참 복잡합니다. 우리로 치면 '원조 충무 할매 김밥'이나 마찬가지 이름들이지만 영어도 아니고 불어, 독어, 이태리어, 스페인어... 이러니 영어 하나 제대로 하기도 벅찬 중생에게 와인 이름은 거의 암호 수준입니다.

그간 마신 리제르바 reserva 급의 와인을 먹은 소감을 한꺼번에 몰아서 올려봅니다. 이탈리아는 Riserva, 프랑스나 스페인은 Reserva, 미국에서는 Reserve 로 표기되는 것 같습니다. 이 딱지가 달린 놈은 보통 병입 bottling 하기 전에 오크 Oak 통에서 상당기간 숙성시킨 와인을 말합니다. 덕분에 가격대가 좀 올라갑니다. 이번에 마신 칠레산의 경우는 1년 반을 숙성시키고 병입 후 다시 6개월을 재운 뒤 출시한 것입니다. 이탈리아 와인의 경우는 최소 3년 (어떤 자료는 5년이라던데 어느 것이 정확한지는 저도 모릅니다.) 숙성을 시켜야 리제르바 딱지가 붙는다고 들었습니다.

우선 칠레산 얄리 그랑 리제르바 메를로 Yali Gran Reserva Merlot 2002년산. 가격은 3만원대 중반. 생산자는 비나 벤티스퀘로 Vina Ventisquero, 생산지는 마이포 밸리 Maipo Valley, 포도 품종은 와인 이름대로 메를로 Merlot 입니다. 얄리는 이 회사에서 나오는 와인 제품군의 하나로, 그외에 엘초 Yelcho, 탄테웨 Tantehue 등의 제품군이 있는 듯 하네요.

맛은 부드럽습니다. 집에서 치크 케이크, 치즈-토마토 스파게티랑 먹었는데 궁합이 좋더군요. 꼴딱꼴딱 잘 넘어갑니다. 한 반 병정도 남은 것을 최모님, 윤모님과 모여 홍대의 某스파게티 집에서 마저 비웠습니다. 이 때도 닭고기 파스타랑 피자를 시켜 같이 먹었는데 괜찮았습니다. (펌프질로 공기를 뺐다고는 해도 딴지 1주 정도 지난 와인이라 맛이 약간 빠져있긴 했네요.)


다음 것은 칠레산 화이트입니다. 에라쥐리즈 막스 리제르바 샤르도네 Errazuriz Max Reserva Chardonnay 2000년산. 모백화점 와인샵에서 추천을 받아 4만원대 중반에 구입. 샵에는 2000년산과 2002년산이 있었는데 가격은 같지만 2000년산쪽이 맛이 훨씬 좋고, 이 빈티지는 자기네 가게에서는 마지막 남은 한 병이라며 추천해 주더군요. 와인 색도 2000년산 쪽이 좀 더 짙었습니다.

실은 샤르도네는 이것이 처음 먹어보는 겁니다만, 먹어보니 이거야 말로 전형적이고 모범적인 화이트 와인의 모습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처음 먹었을 때는 '스위트 화이트를 좋아하는 내 취향보다는 좀 드라이하지만 괜찮군'이었는데, 먹고나니 더 갈증이 생긴달까요... 와인이 더 당기는 겁니다. 홀짝 홀짝 마시면서 '어? 괜찮네' 하면서 또 홀짝 홀짝 계속 들어가더군요. 이거 먹을 때도 치츠케익이랑 스파게티를 같이 먹었는데 반주로도 좋았습니다. 음식이 자꾸 자꾸 당기게 만들더군요. 흠이라면 다소 높은 가격.


다음은 이탈리아산 카스텔로 디 퀘르체토 Castello Di Querceto - 참나무 숲의 성이라는 뜻 - 에서 만든 끼앙띠 클라시코 리제르바 Chianti Classico Riserva 2001년산입니다. 가격은 5만원대 중반인데 세일 때 20% 할인받아 구입했습니다.

DOCG급 와인인데, 이탈리아 와인의 등급 체계에서 가장 높은 등급으로 병목에 붙은 핑크색 띠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DOCG가 아니라고 맛이 없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지만, 일단 DOCG 급이면 일정 이상의 품질을 보장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카스텔로 디 퀘르체토에서도 치냘레 Cignale 라고 하는, 소위 수퍼 토스카나가 나오고 있지만 이건 가격이 상당하더군요. (13만원대)

보디감이 있지만 떫은 타닌과는 다른 종류의 강렬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파스타와 같이 먹었는데 궁합이 나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썩 좋지도 않았습니다. 풀보디까지는 아니지만 다소 무거운 감이 있는 것이 파스타보다는 안심 스테이크 같은 고기 요리에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제조자의 레 까판네 Le Capanne 보다 한층 더 강렬한 맛이 있었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레 까판네를 사는 쪽이 나을지도 모르겠군요.


[2006년 6월 13일 추가]
칠레산 테라노블 그랑 리제르바 Terra Noble Gran Reserva 2002년산. 가격대는 4만원대 후반. 포도 품종은 까베르네 소비뇽입니다.

살 때는 몰랐는데 따고 보니 unfiltered 와인이더군요. 코르크 안쪽과 병입구 부근에 주석산염으로 보이는 침전물이 한 가득 엉겨붙어 있었습니다. 요즘은 이런 침전물을 줄이기 위해 냉각, 젤라틴, 여과 등 여러가지 양조 기법을 쓰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별로 없지만, 이런 인위적인 양조 방법에 반대해서 일부러 침전물 제거를 하지 않는 와인도 있습니다. 침전물은 맛에는 별 영향이 없다고 합니다만 마시는 사람에 따라서는 별로 기분 좋지 않게 느낄 수 있으니 unfiltered 와인은 구입 전에 그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보통은 병의 레이블에 표기가 되어있습니다.)

향은 일전에 마셨던 카스텔리나 디 카스텔라레(이탈리아의 끼앙띠 와인)와 비슷한, 다소 퀴퀴한 냄새가 올라옵니다. 맛이 꽤 특이하더군요. 와인이 잔에서 입으로 흘러드는 순간은 이게 와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맛이 느껴지질 않지만 입에 머금었던 와인을 목 뒤로 꼴딱하고 넘기는 순간에 술이 입안 가득히 퍼지는 느낌입니다. 이런 묘한 느낌은 처음이군요. 안 좋게 말하자면 입에 흘러드는 순간에는 물같다고 느꼈으니까요.

한 달 넘게 지난 며칠 전, 생일에 형님에게서 고급 와인을 한 병 선물받았습니다. 이탈리아 와인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Brunello di Montalcino 반피 Banfi. 미국인이 이탈리아에 설립한 반피라는 와이너리에서 만든 고급 와인인데, 와인 이름은 '몬탈치노 지방의 브루넬로'라는 뜻이고 산지오베제 Sangiovese 품종을 몬탈치노 지방에서는 브루넬로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10만원대 중반의 고급 와인이라 아직 따지 못하고 있는데, 이 와인에 대한 형님의 코멘트가 제가 테라 노블에서 느꼈던 것과 유사했습니다. '처음 마실 때는 와인같지 않고 아주 투명하지만 목으로 넘긴 뒤의 피니쉬가 훌륭하다.'고 말해주시더군요.

반피는 아직 따지 않았기 때문에 (올해 말 크리스마스 때나 따볼까 생각중입니다.) 둘의 맛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런 맛의 와인도 하나의 개성인 것이라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2006/06/13 13:59 2006/06/1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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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otcat [2006/04/27 2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면 볼수록 와인을 마셔보고싶어지게 하는 글들입니다;;;
    월급 타면 휴무일에 맞춰서 마주앙이라도 마셔봐야겠습니다.

  2. skill [2006/06/14 16: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일이셨군요. ^^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