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몽라퐁, 티냐넬로, 마르사네, 베어렌아우스레제

[맛난거]
얼마전 절친한 친구와 오랫만에 만나 회포를 풀며 마신 와인입니다. 안티노리 Antinori 社의 티냐넬로 Tignanello 2001년산. 지금껏 제가 개봉한 와인 중에서는 가장 고가(10만원 초-중반)의 물건입니다. S社 CEO가 임원들에게 선물로 돌렸다고 해서 국내에서 유명세를 타 버린 와인으로 그윽한 향이 좋고 맛도 좋았습니다만... 뭐 그렇게까지 호들갑 떨 정도는 아닌 것 같고 가격을 생각하면 오히려 우울해집니다. 이 절반 가격에 이 정도 맛있는 물건은 찾아보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편으로는 식사 자리에서 다 비우지 않고 며칠에 걸쳐 나눠 마셨으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운 기대감도 남는군요.

소테른 지역의 귀부 와인 중 하나인 샤또 레이몽-라퐁 Château Raymond-Lafon 1998년산. 자료에 따르면 18헥타르 정도의 비교적 작은 밭에서 세미용80%+소비뇽블랑20%로 양조하며, 밭이 샤또 디켐 Château d'yquem, 라포리-페이라게 Lafaurie Peyrageutm, 쉬뒤로 Suduiraut 사이에 끼어 있다고 합니다.
소테른 등급이 정해진 1855년에 이 샤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등급은 매겨지지 않은 와인입니다만, 디켐과 대등한 수준의 와인을 만든다는 평을 듣는다나 뭐라나...... 아직 국내 시중에 들어온 것은 못 봤고 이 와인은 지난 유럽 여행때 사들고 온 것입니다. 가격은 47.2유로로 어지간한 보르도 그랑 크뤼급 와인보다 비쌌습니다.

맛있습니다. 쉬뒤로는 세컨드로 마셔봤는데 공통점도 있지만 향과 뒷맛에서 개성이 다소 다르군요. 오히려 오발렝땡 Haut Valentin과 많은 부분에서 유사하며 더 짙은 응축감이 있습니다. 딴 직후에는 그리 와 닿지는 않았지만 펌핑해두고 다음 날, 또 펌핑해두고 다음 날 하는 식으로 마시니 3일 뒤 쯤에서 비로소 피어나며 맛이 진해지더군요. 아내도 '어? 이거 맛이 진해졌어.' 합니다.

향은 쉬뒤로(...의 세컨드) 처럼 강렬하게 찌르고 들어오진 않지만 나름대로 괜찮고 맛은 벌꿀같은 진한 단 맛에 강하지는 않은 약간의 산미, 그리고 쌉싸레하게 입 안에 가볍게 남는 뒷 맛이 얽혀 있습니다. 티냐넬로를 함께 비운 친구도 3일째 지난 이 와인을 한 잔 마셨는데 아주 맛있어 해서 기뻤습니다.

[2007.9.1추가] 파커 아저씨가 2005년11월30일자로 자기 웹사이트에 이런 노트를 남겼네요.

「 레이몽 라퐁은 1/3값 이하에 이켐(Yqeum)에 맞먹는 광채와 장중한 풍성함을 맛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눈여겨 봐야할 소테른 지구의 샤토다. 포도원은 이켐의 포도원에 바로 인접해있고 명성이 자자하다. 불행하게도 이 와인은 시중에서 찾아보기가 대단히 힘들다. 생산량이 적은데다가 (연간 1300케이스) 소유주인 Pierre Meslier가 생산량의 대부분을 유럽지역의 개인 고객들에게 팔기 때문이다. 」

부샤르 페레 에 피스 Bouchard Père & Fils 의 마르사네 Marsannay 2003년산. 마르사네는 부르고뉴 꼬드 드 뉘 Côte de Nuits 가장 북단의 마을입니다. 부르고뉴 지방의 AOC는 대부분이 1937년을 전후하여 정해졌는데, 마르사네는 최근인 (20년이나 지났지만) 1987년에 AOC를 받은 산지입니다. '신의 물방울'에서는 도멘 레스노의 마르사네가 프랑스-이탈리아 와인 승부에 등장했었군요.

부드럽고 맛있네요. 아내도 맛있다고 해서 제가 놀랐습니다. 아내는 포도주는 잘 모르지만 제가 따라주 술을 딱 한 모금씩만 맛을 보는데 지금껏 맛있다고 한 와인은 대부분 까베르네 소비뇽 품종이 메인이거나, 아니면 아예 스위트 와인이었거든요. 쉬라나 피노 누아는 아내에게서 홀대 받았는데 왠일로 피노 누아를 맛있다고 하는 걸까요?

독일산 폴머 Vollmer 베서부르군더 베어렌아우스레제 Wesser Burgunder Beerenauslese 1992년산. 일전에 아주 맛나게 마셨던 슈팻레제를 만든 회사의 제품이라 사봤습니다만 결과는 그저 그랬습니다. 베어렌아우스레제급이라고는 하지만 14년씩이나 묵혀서 먹기에는 적당하지 않았나 봅니다. 식초가 되었거나 못 마실 와인은 아닙니지만 와인에 힘이 없다고나 할까요... 좀 흐리멍덩한 느낌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신지 꽤 되었는데 거의 두 달 지나서야 올리게 되는군요. 샤또 오 발렝땡 2001년산과 2002년산을 비교해서 마셔봤습니다.

2001년산은 이걸로 3병째 마시는 것인데 2002년산과 색도 많이 다르고 AOC의 산지 표시도 서로 다르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비교해보고 싶었습니다. 옛날에도 한 번 썼지만 2001년은 까디악 Cadillac, 2002년은 프레미에 꼬뜨 드 보르도 Premieres Côte de Bordeaux의 지명 표기로 생산되었고, 2003년은 마셔보지는 못했고 사진만 구했는데 다시 까디악 지명으로 생산되었습니다.

2002년은 마셔보니 2001년과 너무 차이가 나더군요. 눈으로 보기에 색부터 차이가 나고, 맛도 2001년에 비하면 당도가 떨어지고 맛이 흐리며 쌉쓰름한 뒷 맛이 너무 강하게 남아 별로였습니다. (사진에서 2002년쪽이 불투명하게 보이는 것은 병 표면의 이슬 때문입니다. 색상만 비교해보면 2001년쪽이 더 다갈색 기운이 감도는 꿀색이 납니다.)

2001년은 구한 몇 병 중 일부는 율러지(코르크 아랫면과 액체 윗면 사이의 간격)도 벌어져 있었고 (사진의 2001년은 정상품) 호일도 병에 들러붙어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호일을 제거하자 코르크 측면으로 끓은 흔적이 역력하더군요. 일전에 마셨던 2001년의 기억이 너무 미화된 것인지 아니면 새로 구한 병이 끓었던 것이기 때문인지 2001년산의 맛도 예전처럼 좋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끓지 않은 병이 아직 있으니 나중에 따보면 명확해질지도요.

이것은 인터넷에서 어렵사리 긁은 2003년산 사진. 아쉽게도 수입사는 이 와인을 더 이상 수입하지 않는다고 한다. 2003년산을 꼭 마셔보고 싶은데 어디서 구하나? 인터넷으로 와인 주문하기엔 좀...
2006/10/23 21:13 2006/10/23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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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ghtwave [2006/10/25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딱 보기에도 2001년이 더 맛있어보이는군요...

    • 마근엄 [2006/10/25 2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실은 저도 처음에 2001/2002 중에 색깔 보고 2001을 샀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이 좋아하는 금딱지 레이블도 한 몫...

  2. 훼라리 [2006/10/25 1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처에 짱박아둔 티냐넬로를 마셔야 하는데.
    근데 갑자기 기대도가 떨어지네.
    역시 티냐넬로보다는 사시까이야 인가?